우리 종가(宗家)는 인동장씨(仁同張氏) 시조(始祖) 삼중대광공신호위상장군(三重大匡公神虎衛上將軍) 휘(諱) 금용(金用)의 유허지(遺墟址)로서, 고려초(高麗初)에 창건(創建)한 후 천여년(千餘年)동안 종손(宗孫)이 대대(代代)로 물려가며 세거(世居)하고 있는 유서(由緖) 깊은 고택(古宅)으로, 가묘(家廟)를 복원(復元)하여 유림(儒林)의 공의(公議)로 충정공(忠貞公) 불천위(不遷位)를 함께 모시고, 여러 번 중수(重修)를 거쳐서 한집에서 종손(宗孫)이 살아 온 것은 이 세상(世上)에 드문 일이며 자랑스러운 일이다.
|
구 분 |
연 혁 |
고려초(高麗初) |
창건(創建) |
1592년 선조25년 |
임진왜란때 병화(兵火)로 건물(建物)이 전부(全部) 소실(燒失) |
1631년 인조 9년 |
20대종손(代宗孫)인 극명당공(克明堂公) 휘(諱) 내범(乃範)께서 구지(舊址)를 다시 축조(築造)해 종가중건(宗家重建) ▶ 여헌(旅軒) 선생(先生)이 지은 중창문(重創文)이 있다. |
1870년 고종 7년 |
건물(建物)이 오래되고 퇴락(頹落)하여 축대(築臺)를 쌓고 당(堂)을 넓혀 크게 중수(重修) ▶도사(都事) 풍산인(豊山人) 유주목(柳疇睦) 선생(先生)이 지은 상량문(上樑文)과 ▶이조참판(吏曹參判) 휘(諱) 인원(仁遠)이 지은 종청중수기(宗廳重修記)가 있다. |
1957년 정유년 |
정침(正寢) 칠간(七間)을 중창(重創) |
1982년 임술년 |
사랑채 중창(重創) ▶후손(後孫) 승희(承熙)가 지은 종가(宗家) 중창기(重創記)가 있다. |
1994년 갑술년 |
종가중건(宗家重建) 결의 |
1999년 3월 5일 |
대동보(大同譜)의 헌성금(獻誠金)으로 기공(起工) |
1999년 6월 7일 |
상량(上樑) |
2000년 3월30일 |
준공(竣工) ▶대지(垈地) 488평(坪), 건물(建物) 27간(間) 110평(坪) |